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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PD도 PD다…“같은 노동엔 같은 보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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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희망을 찾아서]20. 비정규 방송연출직 노동자

KBS가 지난달 말로 계약이 만료되는 비정규직 18명과 재계약을 하지 않아 논란을 빚고 있다. 그러나 소리 소문 없이 자신의 의사와 무관한 실업 상태에 놓인 또 다른 비정규직 방송 분야 종사자들이 있다. 비정규 방송연출직 노동자인 ‘독립PD’들이다. 독립PD는 방송사에 소속된 비정규직 PD와 프리랜스 PD, 독립제작사 소속 PD를 아우른다. 지상파 방송사에 불어닥친 경기 한파를 가장 고통스럽게 체감하고 있는 직군이 바로 이들 독립PD다. 이들은, 이미 많게는 반 토막까지 난 외주제작비 탓에 인건비를 큰 폭으로 깎인 데다 떨어진 제작비만큼의 협찬 유치를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터였다.

▷저임금 장시간 불규칙 노동=30일 한국독립PD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대비 절반 가까운 독립PD가 현재 유휴 인력이 돼 일손을 놓고 있는 상태다. 광고 매출이 급감한 지난해 10월께부터 외주제작비를 대폭 삭감하기 시작한 지상파 방송사들이 올 3월께 들어선 기존 프로그램의 재방송 비중을 크게 늘렸고, 이에 따라 종전의 40∼50%에 해당하는 독립PD가 일자리를 잃게 됐다는 게 독립PD협회 관계자의 전언이다. 지상파 방송사에 프로그램을 납품하는 독립PD ㄱ씨는 “올 봄 개편 이후 외주제작 프로그램들이 ‘와장창’ 없어진 탓에 특히 30대 초반의 5∼7년차 독립PD들의 경우 대다수가 아예 놀게 됐다”며 “인력 공동화(空洞化)를 방불케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독립PD의 고용 안정성은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이종구 성공회대 교수(사회과학부)가 지난 4월 비판사회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독립PD의 소속사 평균 재직 기간은 1년 6개월 미만이다. 이 교수는 “현행 비정규직 보호법에 규정된 정규직 전환 의무 발생 고용 기간이 2년이란 점에 비춰봐도 이들은 안정성이 현저하게 저하돼 있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같은 노동에 대한 보상이 소속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도 문제다. 이 교수는 독립PD의 노동 조건을 저임금과 장시간 불규칙 노동으로 요약한다. 이 교수에 따르면 독립PD의 지난해 평균 임금은 2007년 수준(2721만 원)보다 100여만 원 적은 2619만 원이다(평균 경력 7.8년). 경력별로 보면 PD의 경우 연간 3000만 원을 약간 넘는 수준을 버는 게 통상적이었고 AD의 소득은 1200만 원 정도에 그쳤다. 이는 3000만 원 정도로 알려진 지상파 방송사 정규직 PD의 초임 수준에 견줘 비슷하거나 아주 낮은 수치다. 절반 정도는 월급을 받지만 프로그램 주기에 따라 불규칙하게 임금 지급이 이뤄지는 경우도 22.7%나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고용보험·건강보험·국민연금·산재보험 등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경우는 70% 내외나 됐다.

주당 평균 근로일 수는 5.8일이며 주 5일제로 근무하는 경우는 20.9%에 불과했다. 평균 근로시간은 11.8시간이었고 8시간 이하 근로를 하는 경우는 6.3%에 그쳤다. 또 일주일에 평균 2일 철야 작업을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AD의 경우 7일 근무가 25.5%에 달하고 35.1%가 일일 평균 13시간 이상 근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교수는 “제작비가 늘지 않는 상황에서 직무 범위가 확대될 경우 노동 강도가 높아질 뿐 아니라 노동 시간의 연장과 불규칙화가 초래된다”며 “이는 개인의 생활 시간을 희생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직업 생활과 개인 생활의 황폐화는 결국 신규 입직 희망자의 감소로 귀결되고 있다”고 말했다. 독립PD ㄴ씨는 “요즘 AD가 PD로 살아남는 생존율은 50% 미만”이라며 “제작 인력 수급이 안 돼 대가 끊길 상황”이라고 털어놓았다.

▷외주정책 실패가 빚은 결과=독립PD가 처해 있는 이런 ‘엄혹한’ 현실은 외주정책의 실패가 빚은 결과란 분석이 나온다. 정부는 방송 콘텐츠 제작을 지상파 방송사로부터 분리해 방송 시장의 과점적 구조와 수익 편중을 해소하고 다양한 콘텐츠가 생산되도록 하려는 목적으로 1991년 외주정책을 도입했다. 이후 방송사 편성에서 외주 프로그램이 차지하는 비중과 독립PD의 수는 크게 늘었다. 독립PD협회의 추산에 따르면 1000명이 넘는 독립PD와 350여 개의 독립제작사가 현재 활동 중이다.

그러나 이런 양적 팽창이 질적 다양성을 담보해내지 못한 채 외주 프로그램의 제작 여건만 악화시켰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성공회대 노동사연구소 박준엽 연구교수는 “현재 국내 방송 산업 구조는 지상파 방송사들과 독립PD들이 각각 자기들끼리 경쟁하는 기형적 구도”라며 “독립PD가 방송사의 수직통합적 구조에 편입된 상황에선 양질의 프로그램 제작이나 방송 산업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는 “상황이 이렇게 되도록 규제당국이 수수방관했다”고 덧붙였다.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방송사의 태도도 문제란 게 박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방송사들은 자체 구조조정은 외면하면서 우월적 지위를 이용, 독립PD들에게 수익 악화의 부담을 떠넘기고 있다”며 “이는 외주제작을 담당하는 주체들의 생존 기반을 와해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방송 시장의 저성장 기조와 과잉 인력 공급이 더 큰 문제란 시각도 있다. 강익희 한국콘텐츠진흥원 수석연구원은 “외주 정책이 독립PD의 근로 조건 개선을 위한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라며 “연출인력 공급 부분에 외려 개선할 점이 더 많다”고 주장했다.

이종구 교수는 “연출직 종사자가 장기간의 현장 훈련을 거쳐 양성되고 지적 감수성과 창조성을 갖추는 게 필요한 ‘재량 노동 종사자’란 특성과 방송사의 독과점 구조가 초래하는 ‘노동력 관리의 수량적 유연화’란 노동시장의 상황 사이에 발생하는 모순이 빚은 결과”라고 설명했다.

▷”전(全)프로 외주화 고려해야”=외주 프로그램을 재활용할 경우 방송사 입장에선 ‘공짜’로 정부가 법으로 규제하고 있는 외주 프로그램 편성 비율을 채울 수 있다. 저작권료 부담이 없어서다. 또 저작권을 보유한 외주 프로그램 방영권을 유료방송 채널에 팔아 수입도 챙길 수 있다. 프로그램을 만들고도 저작권을 갖지 못한 독립PD에겐 한 푼도 돌아가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방송사가 가져가는 저작권을 되찾아오는 건 외주제작비 현실화와 함께 독립PD협회의 숙원이다. 독립영화 ‘워낭소리’로 올해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신인감독상을 받은 이충렬 감독은 지난 2월 시상식에서 “작품을 완성해도 내 것이 아닌 경우가 많다. 저작권 좀 돌려달라. 방송사에 이렇게 부탁드린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감독은 독립PD 출신이다. 독립PD협회 최영기 회장은 “독립PD의 저작권 문제를 포함한 총체적 문제 해결점을 찾으려면 2·3중의 이해관계와 동반된 해법을 찾아야 하지만 먼저 지금 형태부터 바꿔 돌파구를 마련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모든 방송 프로그램을 외주로 제작하는 방안이 장기적으로 모색돼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박준엽 교수는 “외주제작이 전체 편성에서 일정한 비중을 갖도록 법적 규제를 계속하는 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방송사의 횡포는 계속될 것”이라며 “뉴스를 제외한 모든 프로그램을 외주로 제작하도록 하고 독립PD들과 대부분 영세한 독립제작사를 정책적으로 육성하는 방안이 근본적 해결책”이라고 조언했다. 최영묵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과)는 “외주전문 지상파채널을 신설하는 것도 중장기적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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