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blog.naver.com/ourschool06화제의 다큐멘터리 <우리학교>가 개봉한다. 일본 홋카이도의 조선초중고급학교의 학생들이 김명준 감독의 카메라에 포착됐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재일조선인의 역사와 현재가 지금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 것일까.

어떤 학교가 있다. 교실에는 ‘우리 말과 글을 올바르게 배우고 쓰자’라는 구호가 붙어 있다. 여자아이들은 검은 치마저고리를 입고 있다. 아이들이 하는 말은 어순, 발음, 단어 등 모든 면에서 어딘가 어색하다. 그것은 북한에서도 남한에서도 들을 수 없는 말이다. 학교는 소란스럽다. 입시라는 숙명 아래서 무언의 경쟁을 하는 우리에게 익숙한, 무거운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다. 한 해가 지나도 헤어지지 않고 초급부 1학년부터 졸업할 때까지 총 12년간 가족처럼 지내며 함께 공부하고, 우정을 나눈다. 그들은 일본 최북단에 있는 섬 홋카이도에 있는 조선학교 학생들, 우리가 재일동포라 부르는 이들이다. 아이들은 그 학교를 ‘우리학교’라 부른다.
김명준 감독의 다큐멘터리 <우리학교>는 일본 홋카이도 조선초중고급학교의 아이들, 특히 21기 졸업을 앞둔 22명의 아이들을 담았다. 1시간짜리 비디오 500개, 녹취와 편집 준비에만 1년, 그렇게 해서 총 3년 반의 시간동안 아이들과 함께 부대끼며 담아낸 결과물이다. 2004년 1월, 엄청난 눈이 내리는 홋카이도의 풍경과 함께 재일동포 1세들이 어떻게 일본에서 조선학교를 세웠고 현재에 이르렀는지를 설명하는 자막과 함께 영화는 시작된다. 영화는 중간 중간 아이들의 인터뷰가 삽입되는 것 외에는 시간순서에 따라 진행된다. 2004학년도 입학식 풍경은 한국의 여느 학교와 똑같다. 대표를 맡은 아이가 올라와서 결의를 다지고, 교장 선생님의 훈화, 그리고 각 학년을 담당하게 될 선생님의 배정. 선생님의 이름이 발표될 때마다 아이들 사이에선 환호와 탄식이 터져 나온다. 아이들의 얼굴에는 구김살이 없다.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그렇듯 천진한 얼굴로 장난을 치고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관객이 학생이라면 주변의 친구들을 보는 기분을 느낄 것이고, 어른이라면 과거의 추억에 젖어들 만하다. 그러나 거기서 끝은 아니다. 관객의 미소는 영화가 진행될수록 가슴 한구석을 채우는 서글픔과 먹먹함으로 바뀐다.

어이하여 너는 여기에 피어났느냐

곱다고 보아주는 사람도 없는데

어이하여 너는 여기에 피었느냐

임진강 기슭에 새하얀 코스모스 살랑살랑

남북을 오고 가는 그 바람에

설레고 싶어서 피어났느냐

태양절(김일성의 생일인 4월 15일) 기념행사를 맞아 아이들은 학년별로 합창대회를 한다. 고등학교 3학년 아이들이 부르는 ‘분계선 코스모스’는 원래 통일을 기원하는 의미의 노래다. 그러나 아이들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면 원래 의미보다는 재일조선인이 처한 상황을 상징하는 것처럼 다가온다. 그들은 일본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차별받고, 여전히 조국을 생각하며 설레고 있기 때문이다. 재일동포 중 많은 이들이 ‘조선’ 국적을 가지고 있다. 영화의 21기 졸업생 22명 중에도 조선 국적을 가진 아이들이 많다. 한국 정부가 생기기 전 미국과 일본 정부가 분류의 편의상 매겨버린, 현재 실질적으로 존재하지도 않는 국적이다.

일본사회에서 그들이 겪는 고통은 우리가 여러 영화들에서 봐왔듯이 엄청나다. 이들을 힘들게 했던 것은 조국인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초창기 어려웠던 시절의 조선학교는 당시 살림이 제법 넉넉했던 북쪽 정부에서 지원을 받았다. 남쪽 정부는 그들을 도울 여력이 없었다. 이후 경제적으로 여력이 생긴 남쪽 정부는, 조선학교가 북쪽의 지원을 받는다는 이유로 오히려 이념적으로 몰아붙였다. 그래서 조선학교를 다니던 사람들에게는, 고향은 남쪽이지만 그래도 자신들을 알아주고 위해주는 조국은 북쪽이라는 인식이 심어지게 된다. 역사적 배경 없이 현재의 눈으로 그들을 보면 많은 오해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김명준 감독은 “선생님들은 어디까지나 총련조직의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학생들은 아주 복잡하다. 기업인의 자녀일 수도 있고, 총련은 지지하지 않지만 학교는 지지하는 사람의 자녀일 수도 있고, 일본사람과 결혼한 사람의 자녀일 수도 있고, 지금 한국에서 이민 온 사람의 자녀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조선학교가 총련의 학교 혹은 북쪽의 학교라고 말하기는 곤란하다”고 설명한다. 그들은 남과 북이 나뉘기 이전부터 스스로의 힘으로 학교를 뿌리내렸고 48년 일본의 ‘조선학교 폐쇄령’까지도 견뎌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 어느 곳에도 완전히 발붙이지 못하는 불안정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영화 속 어떤 학생은 “자신이 조선사람이라는 것이 싫었습니다”라고 말하고 어떤 학생은 “이 학교에 오기 전까지 자기 자신을 몰랐다”라고 말한다. 자신이 왜 태어났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나 있지만 왜 ‘여기서’ 태어났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현재 외국인등록증에 ‘조선’이라고 쓰인 재일동포는 7만여 명에 이른다. 그리고 이들은 자주 북한사람, 혹은 일본사람으로 오해받는다. ‘분계선 코스모스’는 그들을 위해 만들어진 노래는 아니지만 그 어떤 노래보다 그들의 현실을 잘 표현해준다.

그곳에 우리학교가 있다

조선학교는 일본에서 ‘각종학교’로 분류되고 있다. 각종학교는 예를 들자면 예비학교, 자동차학교, 부기학교 등의 학교교육에 ‘비견되는’ 교육을 행하는 학교다. 공식적으로 학교 졸업자격을 얻지 못하고 대학 수험자격도 얻지 못한다. 그래서 일본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따로 시험을 치고 수험자격을 얻어야 한다. 스포츠대회 등에도 동포들의 투쟁을 통해 90년대에 와서야 참여가 가능해졌다. 그러나 전국대회에 참가하더라도 시와 도에서는 다른 일본학교에게 지원되는 숙박, 교통비 등을 일체 지원해주지 않는다. 홋카이도 조선학교 여자 농구팀은 5~60개의 삿포로 농구팀 중 도대회 진출권을 따낼 수 있는 8강 문턱까지 좋은 시합을 펼쳤지만 결국 지고 만다. 5명이 팀을 이루는 농구에서 정규 전수는 5, 6명이 전부. 그나마 고3이 3명이기 때문에 내년부터는 대회 참가조차도 불투명하다. 그래서 학생들은 반칙이나 퇴장을 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 몸을 사리며 경기한다. 축구팀은 예선전 두 번째 경기에서 일본학교에게 패배하고 서러운 눈물을 멈추지 못한다. 자신을 위해 뛴 것이 아니기에 서러움은 더하다. 그러나 그들은 패배자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건강한 정신이 있다. 남에게 기대지도 않는다. 정말 힘이 들 때는 언제나 따뜻하게 맞아주는 학교가 있다. 그들에게 또 하나의 고향이 있다면 그게 바로 우리학교인 것이다.

학교는 필요한 대부분을 자급자족한다. 교사들은 모두 조선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이고 교과서도 재일동포들이 만든다. 그래서인지 마치 세상에 처음 학교가 생겨났다면 이러지 않았을까, 라는 느낌마저 준다. 그런 의미에서 김명준 감독은 조선학교가 불안한 재일동포들의 정체성에 대한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12년간 우리학교를 다닌 아이들의 모습은 상처가 없다는 느낌이었어요. 그냥 사랑받으면서 크고 사랑할 줄 아는 아이들이죠.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으면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이 아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고 그래서 긍정적으로 성장한 경웁니다. 나는 조선학교가 그런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를 위하여




학교의 가장 큰 행사 중 하나인 운동회를 준비하는 아이들은 올해 대깃발의 구호를 무엇으로 정할지 토론한다. ‘비빔밥’과 ‘사랑’ 등의 후보 중 결국 ‘하나’라는 단어가 낙점된다. 앞에 등장하는 합창대회를 준비하며 아이들은 이런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내일은 정말 이기고 싶어요. 그것을 위해서는 모두의 힘이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내일 노래 부르고 있을 때만이라도 좋으니까 하나로 될 수 있다면 내일 웃고 지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하나란 작게는 학교의 학생들, 조금 더 나아가서는 동포사회, 궁극적으로는 남북한의 통일을 뜻한다. 그들이 존재하지도 않는 조선의 국적을 버리지 않는 이유에 대한 김명준 감독의 설명은 이렇다. “분단된 조국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죠. 원래 하나였던 그 조국이 내 조국이고 통일이 되고 나면 통일된 조국의 국적을 가지고 싶다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아직도 먼 곳에서 ‘하나’를 꿈꾼다. 영화에서 재일동포 1세대 할머니는 김명준 감독에게 당부한다. “한국도 내 나라요, 북한도 내 나라요.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게 전해주세요.” 60년대 후반을 배경으로 한 <박치기!>에 나오는“일본에는 북한도, 남한도 없다”는 대사와 결국 같은 맥락이다. 정작 한국에는 통일에 대한 열망이 갈수록 희박해지는 반면, 그들은 반세기가 지나도록 똑같이 하나의 바람을 지키고 있다.

우연하게도 김명준 감독이 <우리학교> 이전에 찍었던 작품의 제목은 <하나를 위하여>다. <하나를 위하여>는 김명준 감독이 일본의 조선학교와 처음 인연을 갖게 만들어준 작품이다. 그리고 지금은 고인이 된 부인 조은령 감독과 만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한국 최초로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단편 <스케이트>의 감독이었던 조은령 감독은 이후 장편데뷔작으로 <하나>라는 제목으로 조선학교를 다룬 영화를 준비하고 있었다. 당시 촬영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던 김명준 감독이 참여하면서 두 사람은 6개월간의 연애 끝에 결혼에 이른다. 7개월의 결혼생활 만에 거짓말처럼 고인이 된 조은령 감독을 대신해 완성한 다큐멘터리 <하나를 위하여> 이후 그는 홋카이도 조선학교에 다시 갔다. 함께 시작한 이야기를 완결해야겠다는 생각에서다.

“나도 아픔 안에서 영화를 시작했지만 아이들과 같이 있으면 우울할 틈이 없었어요. 힘들 때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힘이 났죠. 왜냐하면 희망이 있다는 게 보였거든요. 우리가 희망하고 있는 게 거기 있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했죠.” 카메라에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던 아이들이 속에 있던 말을 털어놓고, 선생님들이 명절에 혼자 남은 그를 위해 일부러 돌아가며 남아서 함께 밥을 먹어주는 등의 경험을 하면서 그는 우리학교와 하나가 됐다. 그리고 그들과 마찬가지로 통일과 재일동포 문제를 고민하게 됐다. 스스로도 “내가 이렇게 변할 줄은 몰랐다”고 할 정도다. <우리학교>는 <디어 평양>과 함께 개인적인 출발이 어떻게 이념을 넘어 보편성을 이루는지를 보여주는 마법 같은 순간을 보여준다.

우리를 잊지 말아주세요

북한으로 졸업여행을 떠나는 21기 아이들은 들떠서 어쩔 줄을 모른다. 법적으로 북한에 갈 수 없는 김명준 감독은 먼발치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지만 그곳에서의 모습은 반장인 재훈이 직접 찍은 비디오를 통해 영화 속으로 들어온다. 아이들은 한국어를 써도, 치마저고리를 입어도 아무도 의식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오히려 감동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가장 인상에 남았다고 말한다. 그것은 몇 번을 갔다 온 교장 선생님이나 처음 갔다 온 아이들이나 마찬가지다. 처음 본 사람들이 같은 핏줄이라는 이유만으로 주는 따뜻함은 그들에게 잊지 못할 경험으로 남는다. 아이들에게는 김일성 동상도 그저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조형물에 불과하다. 2주일간의 짧은 수학여행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가기 위해 정박한 배 위에서 아이들은 함께한 수행원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부르며 모두 고맙다고, 우리를 잊지 말아달라고 목이 아프도록 외친다.

다시 돌아온 일본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만경봉호의 입항을 저지하는 일본 시위대들이다. 여자아이들은 치마저고리를 벗고 체육복으로 갈아입는다. 학교로 돌아가는 버스 안. 아이들의 쾌활한 모습은 없다. 어떤 아이가 김이 서린 창문에 ‘우리나라 통일’이라고 손가락으로 쓴다. 그 아이들 중 조선대학교에 진학하지 않는 아이들은 평생 특별히 다시 북한에 갈 일이 없다. 수학여행이 마지막 조국 방문인 아이들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창문에 쓰인 ‘통일’에는 마치 전시에 대피한 참호 속에서 써나간 듯한 간절함이 묻어난다.

최근의 북한 미사일 문제와 일본인 납치사건 등은 우리에게 잠깐 등장했다 사라진 뉴스일 뿐이다. 그러나 재일조선인들은 그 사건들로 인해 지금도 존재 자체를 위협받고 있다. “영화를 다 완성하고 나서 홋카이도를 몇 번 갔다 왔는데 갈 때마다 오늘은 어느 지역 조선학교에 경찰이 쳐들어갔다는 이야기가 들렸어요. 마치 현대가 아닌 느낌이었죠.” 학교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폭탄을 설치했다.” “학생들을 죽이겠다”는 협박전화가 걸려온다. 어쩌면 그들이 살고 있는 세계는 아직도 40년대와 마찬가지인지 모른다.

그동안 재일동포를 다룬 작품들은 꽤 많이 소개됐다. <박치기!> <우연히도 최악의 소년> <역도산> <고> 등의 영화들과 <디어 평양> <하나를 위하여> 등의 다큐멘터리, <오사카 일레븐> <나는 가요> 등의 TV 방영물까지 방식도 시대도 다양하다. <우리학교>는 지금까지 나온 영화들의 문제의식을 그대로 이어받으며 가장 깊숙한 곳까지 들어간 작품 가운데 하나다. 결국 이 모든 작품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아이들이 외쳤던 ‘우리를 잊지 마세요’라는 말로 요약된다. 일본의 어딘가에 저 영화들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살아오거나 지금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우리학교>는 말한다.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은 그들을 '올바로' 잊지 않는 일이라고.
문성원 기자



[필름 2.0 2007-03-28 19:30]